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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의 심장이었던 동작동 (銅雀洞)
동작구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기사입력  2014/01/16 [05:11] 최종편집    김국제 대표기자
동작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이곳이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도진의 하나였던 동작진을 동재기나루터라 부른데서 유래가 되었다.
 
▲     노들나루와 동재기나루가 표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지도

동작동에서는 동재기.정금마을.배나무골.갯마을. 능배 등의 지명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동작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동작리였다. 1914년 시흥군 북면에 속하였고,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동작정으로 되었다. 1946년 동작동으로 바뀌었고, 1973년 관악구 관할로 되었으며, 1980년 동작구로 이관되었다. 현재 동작동은 사당동에 편입되었다.

▲ 동재기 나루터 표지석
동재기
흑석동에서 현재 국립 서울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 일대에 구리빛 색깔을 띤 돌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나루터는 조선시대 과천.수원.평택을 거쳐 영.호남으로 내려가거나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넜던 교통의 요지이다.

정금마을
현재 경문고등학교 옆에 있는 이 마을은 옛날 정(丁)씨 성을 가진 감사(監司)가 살던 마을이라 하여 ‘정감몰’ 또는 ‘정가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조선후기 이곳에 포방터(사격장)가 있어 여기서 훈련을 마친 뒤 나루를 건너기 전에 인원과 장비를 점검하였다고 하여 ‘점검마을’이라 한 것이 ‘정금마을’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또 서울에서 나루를 건너 호남으로 여행하던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주막이 위치한 산모퉁이 동네라 하여 ‘정거머리’ 동네라고도 불리어졌다고 하는데, 현재 동작동 56.59.61.64번지 일대이다.

터꿀[基谷]
정금마을 우측 동작동 산 16-18번지 일대 산을 말하며, 산 중턱 골짜기에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25 전쟁 전까지 공동묘지로 사용되어 오다가 이후 서울시 소유로 되면서 없어지다가 이장되어 지금은 거의 없고 몇몇 묘소만 남아있다.


▲   겸재 정선이 그린 동작진 모습

배나무골

동작동 41.42.66.71번지 일대의 이 마을에는 광복 전까지 만 해도 아름드리 배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또 마을 근처에 이수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 진주 강(姜)씨 50여세대가 살았으며 현재도 10여세대가 살고 있다고 한다.


배물다리[梨水橋]
1925년대 일제에 의해 설치된 갯말 앞에 있는 다리로 일명 이수교라고 한다. 옛날 다리 남쪽에는 배나무골이 있고 동쪽에 한강물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나루가 있는 물가의 다리란 뜻이다.

갯마을
동작동 80~106번지 일대의 마을로 ‘포촌(浦村)’이라 불렀는데 이 일대가 갯벌인 데서 연유한 지명이다.
 
▲    동재기 나루터에서 작은 배로 한강을 건너려는 주민들


농배 (능배)
현 동작터널과 국립묘지 군악대가 있는 지역에 있던 마을로 약 15가구가 나루터에서 고기잡이와 잡역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상고목나무
동작동 44-12호에 있는 이 나무는 아래쪽의 하고목나무가 죽으면서부터 자라 지금의 큰 나무가 되었다 하며, 현재 하고목나무가 있는 것으로부터 100여m 위 도로 우측편에 위치하고 있다.

하고목나무
현재 동작동 67-1번지 새림연립 앞 길 중앙에 있는 나무로, 고려말 한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짓고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근대화가 된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나무 밑으로 하수도를 내는 관계로 원뿌리가 잘리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죽었다고 한다. 그 뒤 죽은 나무의 밑둥을 이곳 주민의 한 사람이 잘라내었는데 우연인지 며칠 후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이 나무를 베면 며칠을 살지 못한다고 하여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 곳 토박이들은 지금도 1년에 한번씩 돼지머리 등을 준비하여 산고사를 지내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역이다.이 곳은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孔雀峰)을 주봉(主峰)으로 하여 정기어린 능선이 병풍치듯 3면을 감싸고 앞으로는 한강수가 굽이쳐 도는 풍수상 명당으로 손꼽히는 43만여평의 포근한 땅이다.
 
▲    눈 덮힌 국립 서울 현충원의 모습


국군창설 이래 전사자들을 서울 장충단공원 내에 있는 장충사에서 모셔왔는데, 6.25전쟁이 발발하여 전사자 수가 증가하자 군묘지 설치 문제가 논의되어 1955년 7월 15일 현재 위치하고 있는 동작동에 군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를 창설하였다. 1956년 4월 13일 군묘지령이 제정되어 전국 곳곳에 이름없는 넋으로 산재하고 있는 국군장병들의 묘지를 안장하였다.

초기 국군묘지에는 군인과 군무원만을 안장하였으나,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을 확대하여 안장함으로써 겨레의 성역으로서 국립묘지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1996년 6월 1일에는 '국립묘지관리소'의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개명되었고, 2006년 1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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